본문 바로가기
생활의 깨알 정보

대구 육개장

by 스마트님 2017. 7. 19.
반응형

대구 육개장

전국에서 얼큰하면서도 다양한 버전의 쇠고기국을 가진 도시는 대구가 유일합니다.

대구 육개장의 특징 중 하나는 붉고 걸쭉한 고추기름, 국이 끓을 때 고춧가루를 넣지 않고 녹인 쇠기름으로 고추기름을 만들어 양념으로 넣는다. 대구는 삼복에는 엄청나게 땀을 흘리고 겨울에는 사람을 동태로 만들 정도의 혹한이다. 고춧가루에 들어있는 캡사이신 성분이 여름에는 땀을 배출해 주고, 겨울에는 찬 몸을 덥혀주는 구실을 한다. 1929년 12월 종합 잡지 "별건곡"에도 대구가 육개장의 고장이었음을 알려 주고 있으며 최남선의 "조선상식 문답"에도 육개장을 대구의 명물로 소개하고 있다. 

1946년부터 한일극장 공터 나무시장에서 국에 밥을 말아 팔던 국일식당은 사골과 사태를 밤새도록 고아 우려낸 육수에 대파와 무우를 넣고 고추가루와 다진 마늘을 듬뿍 넣어 얼큰하고 매운 듯하면서 개운한 뒷맛이 일품이었다.

6.25전쟁이 나자 전국 각처에서 피란민이 대구로 모이면서 국밥 형태의 상차림을 싫어하는 사람들이 "밥따로 국따로"를 주문하면서 생겨난 것이 따로국밥이다.

따로국밥은 육개장의 상차림의 형태를 말하는 것으로써 "얼큰 화끈"한 대구만의 맛을 대변하는 대구 향토음식의 좌장격으로 전국에서 몰려온 피난민들 사이에서 폭발적 인기를 끌었다.

 

 

 

한국 국의 출발은 개장

한국 육신문화는 13세기 몽골이 고려를 침략할 때부터 시작된다. 하지만 일반인에게 고기는 언감생심의 식재료. 다들 풀죽을 먹고 연명했다. 1960년대까지 대다수 서민의 삶이 그랬다. 쇠고기는 1970년 경운기가 전국 농촌에 대량 보급되면서 대중적으로 보급되기 시작한다. 일소가 육식용으로 도축되기 시작한 것이다. 그 전에 쇠고기국은 일반인에게는 '불가능의 국'이었다.

 

개장은 어떻게 육개장이 되었을까?

매년 오뉴월이면 선인들은 보양 차원에서 자기 동네의 개를 많이 도축했다. 개가 품귀현상을 보이게 되면 다른 고기가 필요했는데 이때 병든 소를 잡아 국을 끓이면 그게 육(쇠고기)개장이 된다. 개(狗)를 대신(代) 했다고 해서 ‘대구탕(代拘湯)’이라 했다. ‘쇠고기를 주재료 로 해서 끓인 개장’이란 뜻이다. 닭을 갖고 끓이면 ‘닭개장’, 양고기가 동원되면 ‘양개장’이 되는 것이다.

고운 고춧가루가 들어간 얼큰한 육개장의 역사는 그렇게 오래되지 않는다. 육개장이 본격화 된 것은 일제 강점기 때. 그 이전에는 고기 가 귀해 먹고 싶어도 먹을 수 없고 장만하려고 해도 할 수 없다. 일제 때 육개장 전문업소가 전국 각처에 돋아난다.

가장 맵고 얼큰한 스타일의 육개장은 단연 대구가 본고장이다. 일제 때 대구육개장은 일명 ‘대구탕(大邱湯)’으로 불렸다. 생선으로 끓인 대구탕(大口湯)과 이름이 같아 헷갈리기도 했다. 어떤 이들은 대구육개장의 준말로 대구탕(大邱湯)을 사용했다. 더러 ‘대구탕반(大邱 湯飯)’이라고도 했다. 대구탕반은 국에 밥을 만, 일종의 해장국 같은 것이어서 육개장과는 좀 차이가 있다.

대구가 육개장의 도시란 사실을 입증하는 자료가 있다.

1926년 5월14일자 동아일보 기사 중 이런 대목이 있다.

서울 공평동에도 대구탕반이란 음식을 판매하는 식당이 있다.

1929년 12월1일자 종합잡지 ‘별건곤’ 중 ‘달성인’이란 익명의 필자가 적은 ‘대구의 자랑 대구탕반’ 중에 이런 대목이 나온다. 대구탕반은 본명이 육개장이다. 대체로 개고기를 한 별미로 보신지재(補身之材)로 좋아하는 것이 일부 조선 사람들의 통성이지만, 특히 남도지방 시골에서는 ‘사돈양반이 오시면 개를 잡는다’고 개장이 여간 큰 대접이 아니다. 이 개장은 기호성과 개고기를 먹지 못하는 사람들의 사정 까지 살피고 또는 요사이 점점 개가 귀해지는 기미를 엿보아서 생겨난 것이 곧 육개장이니 간단하게 말하자면 쇠고기로 개장처럼 만든 것인데 시방은 큰 발전을 하여 본토인 대구에서 서울까지 진출을 하였다.”

육당 최남선도 ‘조선상식문답’에서 소설가 김동리도 대구가 한국 육개장의 명소란 점을 적시했다. 김동리는 직접 ‘대구탕(大邱湯)’이란 표현을 사용했다.

대구육개장은 6.25 한국전쟁 때 따로국밥으로 불리게 된다. 따로국밥은 한국의 양반국과 상놈국이 충돌하는 과정이 파생된다. 현재 대구 따로국밥의 원조는 대구시 중구 공평동의 국일식당. 원래 국일식당은 국에 밥을 말아 국밥처럼 육개장을 팔았다. 그런데 한말 양반가에선 절대 국에 밥을 말아먹지 않는다. 그건 가축들이나 먹는 무례한 음식으로 폄훼한다. 그런 식습관을 가진 양반이 대구로 피란 와서 국일식당의 국밥을 접하곤 기겁을 한다. 결국 식당주는 그런 양반 때문에 국과 밥을 따로내는데 그 과정에 ‘따로’가 유명해지게 된다. 거의 반세기 이상 대구에선 대구육개장이란 말보다 따로국밥이 보편적이었다. 이제 대구가 따로국밥을 포함하는 대구육개장 시대를 론칭하려고 한다.

대구만큼 다양한 맵고 얼큰한 육개장이 산재한 곳도 없다. 하지만 따로국밥과 대구육개장은 레시피가 다르다. 일단 선지가 들어가면 따로국밥, 들어가지 않고 사골도 별도 빼지 않고 쇠고기와 대파, 무 만 갖고 끓이면 대구육개장으로 볼 수 있다. 물론 따로국밥은 대구육개장의 파생물이라고 보면 된다.

정리하자면 ‘전통 육개장 스타일’은 옛집, 온천골, 진골목, 벙글벙글, 선지가 들어가는 ‘따로국밥식 육개장’은 국일따로, 교동, 한우장, 한일, 대덕, 성서 등이다. 우거지와 선지가 들어간 대덕식당은 ‘선지해장국형 육개장’으로 분류된다. 선지가 들어가면 ‘대구식 따로국밥’, 선지가 없고 사골 육수 대신 양지머리 만으로 육수를 만들면 ‘경상도식 육개장’, 우거지가 주축이 되면 ‘해장국 스타일의 육개장’으로 분류하면 된다.

육개장도 사골 육수를 베이스로 하는 쪽과 그렇지 않고 일반 반가의 쇠고기국처럼 양지머리 육수를 갖고 국을 끓이는 두 방식이 있다. 경상도 일반 민가의 쇠고기국에 가장 가까운 형태를 내는 식당은 ‘온천골’. 여기는 양지머리, 대파와 무, 그리고 마늘양념장 만으로 끓인다. 현재 대구에는 따로국밥을 포함 육개장은 옛집, 온천골, 진골목 육개장, 벙글벙글, 장작불, 선지가 들어가는 따로국밥은 국일따로, 교동, 한우장, 한일, 대덕, 성서 등 20여개 업소가 있다.

 

대구육개장레시피

요리재료 4인분기준

주재료 : 사골 2kg, 양지 600g, 대파 2뿌리, 무 200kg, 토란대 500g

부재료 : 고추가루 1Tsp, 국간장 1Tsp, 소금 0.5Tsp, 통후추 2g, 참기름 3Tsp, 마늘 1Tsp

 

조리방법 대구식육개장

01. 피를 뺀 사골을 데친 후 새 냄비에 중불에서 사골 국물을 우려낸다.

02. 양지와 굵게 썬 무를 넣고 반 정도 무르게 익힌다.

03. 양지와 무가 익으면 건져서 고기는 먹기 좋게 썰어두고 무는 나박 썰기 한다.

04. 토란대는 물에 불려 삶아서 아린 맛이 제거되도록 물을 갈아 주어 가면서 20분 정도 부드럽게 익힌다.

05. 대파는 5-6cm 길이로 썰어 뜨거운 물에 데친다.

06. 믹싱볼에 썰은 양지와 토란대를 넣고 고춧가루, 참기름, 마늘, 국간장 넣고 고루 비빈다.

07. 냄비에 참기름 넣고 가열 후 6을 넣고 볶는다.

08. 고추기름 색이 우러나오면 여기에 사골육수를 넣고 끓이다가 무와 대파를 마저 넣고 간과 맵기를 조절하여 마무리한다.

09. 예열한 뚝배기에 육개장을 담아낸다.

 

출처 : 대구푸드(http://www.daegufood.go.kr/kor/)

반응형